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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2017)

작성일 20-10-17 13:24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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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중반까지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어준 작품입니다.

"재미"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에게 재미있는 영화란 이런것었지않나 싶어요.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갈등과 마주하되, 갈등의 반복으로 자기연민의 감정이 깊어집니다. 현실과 마주하게되며 욕망을 향한 한 인간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체험하는 과정이 저에겐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그것은 예술영화나 장르영화를 불문했습니다.  반대로 영화가 시작하면서 캐릭터가 세상을 향한 피해의식을 지녔고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경우를 싫어했습니다. 그러한 영화들을 "감상주의"라 생각했고 자신의 나약한 내면을 맹목적으로 영화속 캐릭터에 투영하려는 태도라고 보았어요.


<고스트 스토리>는 아내와 살던 남자가 사고로 죽게되고, 유령으로 남아서 아내의 일상을 지켜보는것으로 전개됩니다. 원래 둘이 살던집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고독에 휩쌓입니다. 유령이 되어 그것을 바라보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초반의 영화 템포는 굉장히 느리고 서사의 굴곡이 있긴하지만 연출이 평면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합니다.

너무 지루해서 "핸드폰이나 보면서 영화를 봐야하나.", "처참한 영화로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서 남겨진 자들에 대한 연민을 전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던것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제목대로 "고스트"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임을 느낄수 있습니다. 산 사람이 남겨진게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진것이죠. 남편이 죽고 슬퍼하던 아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내와 연애를 하는것도 같습니다. 유령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죠. 아내는 이사를 하고 집을 떠나갑니다. 유령은 텅빈집에 혼자 남겨집니다.


영화의 주제를 말할것이라 아래는 내용 전반의 스포일러가 될것이겠네요.


후반부의 내용을 시시콜콜 늘어놓기보다 영화의 주제에 좀더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죽은 자의 시점에서 말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이사를 가며 집안에 어떤 쪽지를 숨겨놓습니다. 그것은 떠나는 집에 대한 향수이며, 자신이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연서입니다. 유령은 아내가 쪽지를 문틀의 틈안에 숨겨놓는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떠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쪽지를 읽고싶어하죠. 아내를 사랑했던 유령은 남겨진 집을 지킵니다. 곧 새로운 이들이 이사를 와서는 새로운 가구와 살림살이들로 유령이 살았던 공간을 채웁니다. 유령은 자신이 사랑한 사람과 함께한 공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인의 공간으로 바뀌어가는것을 잔인하도록 지켜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발판의 역할을 할때에는 고귀한 원동력이 됩니다. 이 영화에서 유령이 느끼는 사랑은 현실을 마주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내와의 이별을 마주해야하는 현실에서 도피하기위한 "그리움"을 전합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랑이 발목을 잡는 셈이죠.

영화는 한 커플이 특정한 집에서 있었던 특정한 시공간의 사랑을 그리면서도, 그들의 개인사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습니다. 살아있을 적 남편은 어떤 모호한 이유에서 집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그들의 직업은 무엇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둘의 구체적인 추억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정보와 의미들이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피상적이고 일반론적인 접근으로 그들의 순수한 개인사에 관객을 몰입시키기보다, 관객의 보편적인 감성을 억지로 투영하게끔 만듭니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것이 심히 답답하고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피상적 접근을 관객에게 강요하는것이 연출의 허점이 아니라 의도된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수 있으나 심리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과거의 경험은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합니다. 좋지않은 경험이 우리를 괴롭힐때에 그것은 "체험한 기억"이기보다 경험한것에 딸린 "감정"이라는 겁니다. 기억은 흐릿해져도 당시의 감정이 남아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죠. 그것을 "정동"이라고 말합니다. 용어의 이름이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상실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위해 우리는 보편적으로 "새로운 가치"로서 그 아픔을 덮으려 합니다. 그것은 치유의 방편이 될수는 있으나 "극복"의 의미에서 완벽한 치유는 아닙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고통의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합니다. 나는 진실로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갈등의 심연속으로 가라앉아야 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픔을 "망각"하고 있는것이지, 극복한것이 아닙니다.


영화에서 유령은 사랑의 상실이라는 고통을 앓으면서, 남겨진 공간의 미래와 과거의 기억속을 유영합니다. 상실의 고통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연민을 하고있는 것이죠. 고통받는 인간의 영혼을 "죽어 남겨진 유령"이라는 설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유령이 남겨진 집에서 이름모를 타인들이 파티를 벌입니다. 걔중에 허세에 젖은 어떤 예언자가 말하기를 결국 인간의 삶은 유한한것이며 인류는 덧없이 먼지되어 사라질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멜로디와 드넓은 우주가 그리 허무하게 끝을 맞으리라 말합니다.

유령은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집이 지어지기 이전의 시대와 집이 허물어진 시대속에서 방황합니다. 마치 아내와 사랑했던 공간의 의미가 부질없어진듯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영화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유령은 다시 아내와 사랑했던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공허의 시간을 지나온 유령은 아내가 남긴 쪽지를 읽으려합니다. 그리고 유령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은 고통받던 유령에 대한 애도가 아니며 새로운 삶을 말하는듯 합니다. 허무의 시간을 지나온 유령에게 다시금 마주하는 아내의 연서는 고통이기보다 희망에 가까웠고 설렘을 전하는 음악과 함께 영화는 그렇게 말합니다.

트라우마의 고통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혼은 가장 어두운곳에 있는 감정과 마주해야하는것을 영화는 말하는듯 합니다. 영화의 초반은 스토리전개가 선형적이나 후반부로 갈수록 시공간의 구조가 순행과 역행을 반복합니다. 인물이 겪는 사건들을 선형적으로 나열하기보다, 시공간을 뒤틀어서 특정한 감정과 주제의식을 전달하려 하기때문인데요. 원래 개인적으로 이러한 "예술병"걸린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것들은 철학적 메시지에 지나치게 치중되어있어 "인물의 선형적 서사"를 주제전달을 목적으로 수단화한다는 느낌도 받고요. 어떤것은 서사 자체를 이해할수 없고 마치 혼란스러운 미술작품을 보는듯 "미지에 대한 맹목적 추앙"을 보는듯도 합니다.


이 영화는 답답하고 지루한 전개를 꿋꿋히 참으며 봐야했고, 결국 유령이 궁극적으로 마주해야하는 감정과 마주했을때 그 답답한 응어리가 풀어지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뒤틀린 구조"와 "인물의 개인적 스토리"가 일치하는것이죠. 유령이기때문에 선형적 흐름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시공간의 나열에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러한 연출의 의도를 돌이켜보았을때 초반에 관객을 지루하게 하는것은 "그렇게 의도된 것이다."라고 말할수 있을것같네요.

예술영화들을 고집스럽게 보아왔지만 영화를 보며 이런 독특한 기분을 느낀것은 처음이라 감회가 새롭네요. 그동안 작품안 인물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보아왔던것 아닌가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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